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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의 참된 본질을 회복하고 실천하라! '

한국교회를 새롭게 갱신, 개혁하기 위해선 '참된 헌금의 본질을 회복하고 실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헌금에 대한 오해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는 헌금에 대한 오해들이 만연해 있다.

첫째, 어떤 사람들은 헌금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과 구주로 믿고 신뢰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헌금이라는 구체적인 종교적 실천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율법주의적 헌금관에 빠진 것이다. 율법주의적인 헌금관에 빠진 사람들 중에는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구원을 못받는 것처럼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다. 십일조 헌금이 교회적으로 또 개인신앙적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천국에 못간다는 식의 주장은 결코 성경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헌금이 복을 받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복은 물질적, 현세적 복이다. 헌금을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으로 갚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기복주의적인 헌금관에 빠진 것이다. 기복주의적인 헌금관에 빠진 사람들은 “심는대로 거둔다”는 주님의 말씀을 “많이 내면, 많은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성공과 번영의 복을 돌려 받는다”는 식으로 오해한다.

셋째, 어떤 사람들은 헌금은 재물을 거룩하게 만드는 종교적인 절차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돈이나 재물은 본래 불결하고 더러운 것이지만, 그것들이 헌금으로 바쳐질 때 거룩하게구별된 예물로 변화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영지주의적인 이원론에 의해 채색된 헌금관에 빠진 것이다. 물질과 재물을 본연적으로 더럽고, 악한 것으로 보는 것은 성경에 의해 지지받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은 다 선하고, 거룩한 선물들이다. 그 중에서 일부를 구별하는 것은 그 일부가 전체를 대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구약의 십일조도 대표성의 원리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 것은 전체가 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맥락에서 일부를 전체의 대표로 드린 것이다.

헌금의 신약적 사례

-헌금의 신약적 사례는 사도행전 2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 (행 2:44-45). 또한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앞에 두매 그들의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줌이라” (행 4:32-35). 그래서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큰 차등이 없이 균등케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물론 사도들 앞에 모여진 헌금을 사용해서 당시 교회사역을 풀타임으로 감당하던 사도들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생계비도 지불되었다. 오늘날 말로하면 헌금을 통해서 사역자들을 위한 사례비가 지불되었고, 교회 내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비도 충당되었다. 사역자들에 대한 사례비에는 선교여행을 할 경우에 필요한 경비 즉 선교비도 포함되어 있었다.

헌금이냐, 연보냐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헌금이라 말 대신에 ‘연보 (捐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고전 16:1, 고후 9:1). 버릴 ‘연’에, 도울 ‘보’ 즉 ‘내것을 버려서, 기부하여,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고후 8:14). 한국교회 내에서도 1960년대 말이나 1970년대 초까지는 ‘연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연보’라는 말은 잊혀지고, ‘헌금’이란 말이 대신 사용되어 왔다. 물론 ‘헌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연보’의 근본 의미를 살린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이다.

헌금의 원리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은 헌금의 원리에 대해서 매우 상세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첫째 원리는 자원하는 마음이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고후 8:3). 헌금은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억지로 해서는 안된다. 헌금을 하는 기본적인 자세는 반드시 헌금을 하는 사람의 자발적인 결정이어야 한다.

둘째 원리는 “힘에 지나도록”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희생적인 자세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희생하는 자세로 헌금하는 것이다.

셋째 원리는 풍성하게 드리는 것이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후 8:7). 여기서 풍성하게 헌금한다는 말은 관대하게 헌금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색함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희생적 자세와 일맥상통한다. 헌금은 관대한 나눔, 너그러운 나눔의 실천과 연결된다는 뜻이다.

넷째는 준비하는 자세이다. 무작정 하거나, 갑자기 하거나, 임기응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자세로 헌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고후 9:5)

헌금의 본질을 회복하라

-헌금은 자원하는 마음, 희생적인 자세, 관대한 마음 그리고 준비하는 자세로 드려서 연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부요케 하는 거룩한 실천이다.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실천하신 바를 따라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9). 그리고 초대교회는 헌금을 모아서 세 가지 영역에 주로 사용했다. 사역자들의 생계를 위한 사례비, 고아와 과부 등을 돌보는 구제비, 그리고 선교비였다. 한국교회가 이런 성경적인 원리를 따라 바른 헌금생활을 회복할 때, 세상의 빛된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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