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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와 내세에 대한 균형잡힌 관점을 회복하자!

오늘날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시급하고 절실한 일 중 하나는 '현세와 '내세에 대한 균형잡힌 관점'을 회복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현세를 무시하거나 도피하지 않으면서도, 본질적으로 영원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도록 인도한다.

기독교 신앙은 현세를 책임감있게 살아가도록 이끌지만, 동시에 다가오는 내세에 대한 열정적인 기대를 배양하게 한다. 기독교 신앙은 현세와 내세에 대한 성숙한 균형 감각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성숙한 균형 감각을 가진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과 천국에 들어갈 때 받게 될 상급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바른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에 따라 현실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극단적인 내세주의와 극단적인 현세주의라는 양극단에 빠져 있다. 극단적인 내세주의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현세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내세에만 관심을 가지고, 현세를 도피하는 부정적 신앙행태를 말한다. 현세는 저주받을 세상으로 정죄해 버리고, 현세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거나 현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신앙행태를 말한다. 분리주의적인 사고와 영성이 극단적인 내세주의에 배태되어 있다. 현세는 무가치하고 내세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지주의적 이원론에 기초한 영성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내세주의는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주님은 현세 속에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고 명령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마 28:19)고 명령하신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고 명령하신다.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히 13:3)고 명령하신다. 복음을 전하고, 선교 사역을 감당하며, 선행을 행하며, 사회적인 약자들을 도우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현세에 대한 무관심으로 현세를 떠나 도피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다.

또다른 극단은 극단적인 현세주의이다. 극단적인 현세주의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내세의 중요성과 의미를 약화시키면서, 오직 현세에만 관심을 갖게하는 신앙행태이다. 특별히 현세에서 그리스도인이 누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강조하는 기복주의와 번영주의가 극단적인 현세주의의 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 건강, 재물, 명예, 성공이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인 것처럼 가르치고 강조하는 흐름이다. 동시에 기독교는 현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사회의 문제 해결을 통한 사회구원을 강조하는 사회복음주의 (social gospel)가 또 극단적 현세주의의 다른 흐름을 이루고 있다. 기복주의와 번영주의는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반면 사회복음주의는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두 가지 흐름 모두 성경이 제시하는 균형잡힌 태도에 반하는 잘못된 흐름임은 자명하다. 그 이유는 우리 주님께서 결코 내세를 버리고 현세에만 몰입하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세를 변혁시키는 것만이 우리의 주관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현세와 내세에 대한 균형잡힌 관점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현세에 대한 바른 관점을 회복하는 것과 연결된다. 현세는 아직도 죄와 사망과 마귀의 지배적인 권세 아래 있다. 그래서 다양한 종류의 고통과 불의가 현세의 삶을 규정한다. 그리고 현세는 우리의 본향이 아니며,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아니다. 현세는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으로의 변혁을 고대하는 여정 중에 있다. 하지만 이 현세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이 현세에 임했고,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현세 속에서 확장되어 가고 있으며, 장차 하나님의 나라는 새하늘과 새땅의 도래로 완성될 것이다. 새하늘과 새땅이 바로 우리가 고대하는 내세이자 우리의 궁극적 목적지다.

이렇게 현세와 내세에 대한 균형잡힌 관점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은 급진적으로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현세의 고통과 불의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는다. 참고, 인내하고, 견딘다. 그러면서 현세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통치가 확장되어 가도록 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여한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딛 2:14)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가 확장되어감에 따라 현세에도 부분적인 변화와 변혁이 온다. 그러나 이 현세가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변혁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현세가 새하늘과 새땅으로 변혁될 때 이뤄진다. 이 완성의 날을 고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복스러운 소망 (딛 2:13)을 품고, 주님께서 주실 상급을 고대하며 분투하고 노력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현세에 함몰되거나 안주하면서 다가오는 내세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도리어 내세를 묵상하면서 현세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내세를 기다린다는 미명하에 현세의 삶 속에서 그가 져야할 거룩한 짐과 책임을 거부하지 않는다. 도리어 현세의 짐과 책임을 적극적으로 감당하면서 내세가 오기를 열정적으로 사모한다. 그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빌 3:13-14)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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