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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게임을 넘어 실천적 영성을 배양하라!

한국교회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일 중 하나는 실천적 영성을 배양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다. 실행하는 신앙이다. 말로만 떠드는 언어게임이 아니다. 말장난이 아니다. 손과 발로 그리고 온 몸으로 신앙고백을 따라 행동하는 신앙이다. 전인격을 다 실어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기독교 영성의 본질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 내에서 종교적인 수사나 언어게임은 팽배하지만, 그리스도인다운 실천의 삶을 찾아 보기가 어려워졌다. 자기가 말한 바대로 실행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리스도인들이야 말로 더 이기적이고, 더 구두쇠같고, 더 인색하고, 더 사기꾼같이 보이는 세태가 되었다. 목사를 먹사로, 기독교를 개독교로, 심지어 목레기 (목사 쓰레기)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이런 입에 담기조차 불쾌한 말들을 쏟아내는 것은 그들 안에 있는 악성과 하나님을 향한 적개심이 표현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실천을 등한시 하고 언어게임에만 몰두함으로써 이런 빌미를 제공한 측면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전체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가 실천의 사람이 될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구약의 대표적인 구절은 미가서 6장 8절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기서 주님은 선한 것이 바로 “정의를 행하는 것”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신약의 대표구절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21-27).

주님의 이 말씀은 실천이 따르지 않은 채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참으로 열매맺는 하나님의 백성일 수 없음을 깨우치신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야고보서 1장 22-27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 역시 말씀을 듣고 행함의 중요성,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바르게 이해되어야 할 것은 우리의 행함과 실천이 결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 행함과 실천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열매요, 목적이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해 준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 목적이 바로 “선한 일을 위하여”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선한 일을 우리는 실천하고 실행해야 하는가. '딤전 6:18'과 '히 13:16'을 보면 선한 일은 결국 ‘관대한 나눔’임을 발견하게 된다. 관대하고 너그러운 나눔을 실천하고 실행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나누라는 것인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성경은 물질과 은사와 재능과 사랑과 복음을 나누라고 명령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과 은사와 재능과 사랑과 복음을 주신 것은 그것을 관대하게 나눠줌으로써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성취될 수 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빛을 비치게 하는 것은 착한 행실을 통하여서이며, 세상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것은 착한 행실 즉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는것이다 (딛 2:14).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실천의 사람들이 될 때 그리고 우리 교회가 실행의 공동체가 될 때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적같은 역사가 성취될 것이다. 부디 그 영광스러운 날이 속히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kurios M  webmaster@kurio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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